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티 누르할리자 (문단 편집) === 4집 이후 === [[파일:external/cdn-images.deezer.com/500x500.jpg]] 1998년 6월 29일 4집 "[[Adiwarna]]"로 컴백했다. 앨범의 뜻은 "다채로운 색깔들"을 의미하며 [[영어]] 단어 "resplendent"와 같다. 이름만큼이나 확실히 더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으며, 이전에 비하면 확실히 세련된 편이다. 물론 동년에 데뷔한 [[안와르 제인]]은 시대를 확 앞서는[* 이 사람의 1집 노래들을 들어보면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.] 노래들을 추구했기 때문에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밀리긴 했지만, 그래도 한발 더 나아가고 있었다. 주요 히트곡으로는 "[[Purnama Merindu]]", "[[Sendiri]]", "[[Diari Hatimu]]", "[[Satu Cinta Dua Jiwa]]", "[[Gelora Asmara]]" 등이 있는데, 전 수록곡을 노래방에서 다 부를 수 있을 정도로[* 말레이시아 노래방은 한국과는 달리 '''뮤비가 있어야만''' 만들기 때문에, 뮤비가 제작되지 않았으면 그것은 곧 '''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다'''는 것을 의미한다.] 전체적으로 인기가 매우 높다. 위에 비디오로 첨부한 것은 "Purnama Merindu". 옆나라 [[인도네시아]]에서도 어김없이 발매되었는데, 다만 노래 "Sendiri"가 "Mencintaimu Selamanya"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어 발매되었다.--그리고 음질은 좋지 않다-- --하지만 이해하자-- 여하튼 얼마나 인기가 높았으면, "Purnama Merindu"가 이듬해 Anugerah Juara Lagu에서 비록 [[M. 나시르]]의 "[[Andalusia]]"에 밀려 패배했지만 그래도 "최고의 발라드곡"으로 선정되었다. 이어 동년 [[중국]] [[상하이]]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타는데 성공했고, 후에 [[카자흐스탄]]에서 열린 Voice of Asia에서 그랑프리 우승을 탔다. "Satu Cinta Dua Jiwa"의 경우 전자에 비해 인기는 낮았지만, 그래도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였으며, "We'll Be As One"으로 [[영어]]로 번역되어 [[호주]]에 진출했으며 "최고의 여성 보컬"은 물론 "세계에서 40번째로 인기가 높은 곡"이라는 상까지도 무난히 탔다. 동년 [[노르아니자 이드리스]], [[리자 하님]]과 더불어 컴플리케이션 앨범 "[[Molek]]"을 냈으며 이 중 시티는 신곡으로 "[[Kini Kau Di Sisi]]"를 냈다. 다만 인기는 생각만큼 높은 편은 아니다. [[파일:external/acabf2bfcafdbd4f4a05d604a538ccc8d58310ee8fe779307cb3dd1e1a3e53bb.jpg]] [youtube(J5PuYXWVLkA)] 이에 어김없이 힘업어 1999년 5월 7일 5집 "[[Pancawarna]]"를 냈다. 뜻은 4집과 비슷하지만 좀 다른데, 예를 들면 뭐 [[https://www.google.com/search?q=pancawarna&rlz=1C1QJDB_enMY632MY635&source=lnms&tbm=isch&sa=X&ved=0ahUKEwiVssbL0OTPAhWIPI8KHfhsA7QQ_AUICCgB&biw=1366&bih=623|이런 거]]다. 그만큼 5집만큼 다채롭지는 않다. 더더욱이나 신남, 슬픔, 고요함, 풍요로움, 추억의 5요소가 다양하게 섞인 4집과는 달리 5집은 전체적으로 슬픔, 고요함, 추억의 3요소에만 지나지 않는다. 물론 "[[Engkau Bagaikan Permata]]"처럼 신나는 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. 다만 4집만큼 신나지는 않다는 것이다. 앨범 준비기간을 생각하면 1998년 말부터 녹음이 되기 시작했다는 얘기인데, 19세의 소녀에서 20세의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티의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. 아이처럼 맑고 귀여운 목소리를 자랑했던 시티의 모습에서, 좀 더 성숙해진 느낌을 볼 수 있다. 주요 히트곡은 "[[Nian Di Hati]]", "[[Engkau Bagaikan Permata]]", "[[Kau Kekasihku]]" 등. "[[Kau Kekasihku]]"의 경우 듀오 [[누룰 & 아자이]][* 한때는 부부였다가 지금은 헤어졌다.]로 더 유명한 [[아자이]]가 처음으로 작곡해준 노래인데 멜랑콜릭한 노랫말이 인상적이다. 이 노래는 "Engkau Bagaikan Permata"와 더불어 2000년부터 2001년까지 Anugerah Juara Lagu에서 문제없이 밀고 나간다. 수록곡 중에 "[[Lelaki (Warkah Seorang Anak)]]"이 있는데, 당시 총리이자 독재자인 [[마하티르 빈 모하마드]]에게 바치는 일종의 정권찬양 노래이다. 다만 그렇다고 해서 [[김정일 장군의 노래]]처럼 정상인이 보기에 혐오스러울 정도는 아니며, 특정한 인물을 언급하지 않다보니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. 나중에는 종교 지도자 [[닉 아지즈 닉 맛]]이 서거하자 그를 추모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.[* 여담으로 닉 아지즈 옹은 야당인 [[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]](PAS) 소속이고, 마하티르는 여당인 [[통일말레이국민조직]](UMNO) 소속이다.]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Bsrcd00-23479.jpg]] 6집은 2000년 1월 1일에 발매되었다. 타이틀은 "[[Sahmura]]". 주요 히트곡으로는 "[[Balqis]]", "[[Ya Maulai]]", "[[Mahligai Permata]]" 등이다. 3집 "Cindai"에 이어 두 번째 전통음악 앨범인데, 다만 3집에 비해 이번에는 종교적 성향이 다소 짙어졌다. 노래 "Balqis"를 보면 가사 중에 "[[샤하다|Syahadah!]]" 하는 부분이 있으며, "Ya Maulai"의 경우는 "아, 주여!"를 뜻하는, 제목부터가 종교적이다. 다만 이외의 노래들은 그렇지 않다. 단 2곡을 제외하고는 구전되는 노래들이라 특정한 부분이 지겹게 반복되던 3집과는 달리, 이번에는 유명 작곡가들이 직접 작곡한 음악성이 뛰어난 노래들이다. 때문에 듣고 보면 별로 지루할 것도 없다. [[파일:external/2.bp.blogspot.com/Siti%2BNurhaliza%2B-%2BSafa%2B2001%2B%2528Full%2BAlbum%2529%2B2.jpg]] 7집은 본인의 21번째 생일인 2001년 1월 11일에 발매하였다. 제목은 "[[Safa]]"로, "하얗고 맑은"을 뜻한다. 이만큼 맑고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다. 변하는 시대에 맞춰 한층 더 세련되고 맑은 노래들을 선보였는데, 대표적인 히트곡으로 "[[Azimat Cinta]]", "[[Percayalah]]", "[[Kudus Sinarmu]]", "[[Bicara Manis Menghiris Kalbu]]" 등이 있다.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모습인데, "[[Lakaran Kehidupan]]"의 경우 파격적인 3D 뮤직비디오로 촬영했다. 촬영지는 [[믈라카]] 주의 [[아예르크로]]. 다른 곡들의 경우 상당수가 [[인도네시아]]의 [[보고르]]에서 촬영되었다. "[[Beradu Di Khayalan]]"의 경우, "Don't Put My Heart On Hold"라는 제목으로 해서 영어로 번역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